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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여류시인 손계숙의 제3시집 『이제야 사랑인 것을』
 안재동  | 2008·12·20 16:34 | HIT : 2,958 | VOTE : 145



사랑에 대한 진실과 소구(訴求) 의식의 끈끈한 발현
여류시인 손계숙의 제3시집 『이제야 사랑인 것을』

달빛 한 다발 붙들고
기억 속에 표류하고 있는
너를 생각한다
 
강변의
창 넓은 찻집에서
차를 마신다
 
기다림을 녹여
그리움을 풀어 마시며
 
별빛이 뒹구는
강변에서
 
씨줄처럼 서 있는
네 웃음소리 건져 올린다
혼절할 만큼 사랑의 무게로
― 손계숙, <마포나루에서> 전문

   시는 왜 쓰는 걸까?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의 학생들은 물론이고 군인, 공무원, 사업가 등 직업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생시 시 한 수 안 쓰고 삶을 끝맺는 사람은 흔치 않으리라.

   곡절이나 삶의 환경이야 어떻든 누구나 그렇게 시를 쓴다. 많이 쓰거나 적게 쓰거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말이다. 그 중에서도 꾸준히, 거의 일상적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시인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등단이란 절차는 그저 형식에 불과 할 뿐, 등단 시인이라 할지라도 시 쓰기를 게을리 하거나 아예 포기한다면 그에게 시인이란 칭호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세상 무슨 일이든 ‘현재’ 누가, 어떤 일을 하는가가 중요한 법이다.    그런데 대체 시는 왜 쓰는 것일까? 그 이유를 대라면 아마도 시인마다 조금씩은 다를 것이다. 필자가 몇몇 시인에게 실제 들은 바로도 가지각색이었다.

   여기 여류시인 손계숙 씨가 상재한 세 번째 시집 『이제야 사랑인 것을』에서 밝힌 ‘시 쓰는 이유’도 눈여겨 보게 되었는데,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 내용인 즉, “사람을 더욱 더 사랑하고 / 나 자신, 그 가운데에 함께 있길 바라서…….”이다.   어느 유명한 원로시인께서는 ‘시 쓰는 이유’를 “마음속에 든 악마를 쫓기 위함”이라고 전하신 바도 있는데 그 말씀에 퍽이나 감동을 받기도 했지만, 손계숙 시인의 ‘시 쓰는 이유’ 또한 그에 못지않다.

못내 아쉬운 언어로
남겨 놓은 유언들이
몸의 속살을 비우면서
풀어 풀어내는 몸짓입니다.
 
지울 수 없는
발가벗은 아픔은
딱지 앉은 찬란한 슬픔이 되어

그대 가슴에
풀꽃 향내처럼 바스락거리고
 
길 잃은 당신의 추억 한 채
몸 섞어 흐르는 안개비 사이로
온몸을 휘감아 돌며
 
목에 차오르는 기억들
자욱히 자욱히 게워 냅니다.
― <빈 가슴에 피는 안개> 전문   

월간문학 출판부를 통해 나온 시집 『이제야 사랑인 것은』은 제9회 한국문학비평가협회 문학상 수상 작품집이기도 하다. 손계숙 시인에겐 세 번째 상재 시집이다. 손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맨살의 그리움은 별비되어 흐르고』로는 설송문학상까지 수상하였으니 그의 시적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된다.

목덜미 잡힌 가을이 외롭다
잊혀진 사랑만큼
 
쓰르라미는 목청을 조여
연시빛 울음을 뽑고
잔가지에 걸린 울음
마음이 시든 마당에 누워 있다
 
일 년의 절대고독에서
길어 낸 고백
백여 일 동안
하늘을 향해 연소시키고
 
그래도
타지 못한 고백의 입자들이
쓰르람쓰르람
가슴을 뜯고 있다
 
여무는 초가을
구슬꽃나무 얼굴 위에
실타래 같은 추억 한 장이
순금으로 앉는다
― <초가을의 노래> 전문

류재엽 문학평론가(신구대학 교수·한국문학비평가협회장)는 ‘서정적 자아와 시적 향기’란 제하의 해설에서 “이번에 상재되는 중견시인 손계숙의 세 번째 시집 『이제야 사랑인 것을』의 작품해설을 위해 앞서 출간된 시인의 『사랑초』와 『맨살의 그리움은 별빛되어 흐르고』를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손 시인이 언제나 잘 정제된 언어를 통해 자신의 시적 에스프리를 표현하는 작가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라고 평(評)하면서, “처음에는 두 권의 시집 제목을 보면서 손 시인의 시가 사뭇 도발적인 애정 일변도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그녀의 시를 대하면서 손 시인이 얼마나 맑고 투명한 서정적 자아를 지니고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사랑의 강 일렁인다
물안개 서성이는
잠실나루 선착장에서
 
나 
그리움 한 입 베어 문
한 편의 시가 되리

강변엔 노을이 타고 있다
타오르다 꺼지지 않는
노을의 불씨로 남아 

나 
한 편의 시를 읊조리고

소라귀 간질이는
신들린 음악에 취해 


아픔을 다독여 주는
넉넉한 어둠이 되리

선착장엔 
오갈든 잡목처럼
가을이 떨어지는데 

새똥처럼 지워지지 않는
그리운 이름 하나
내 삶의 넝쿨 속으로
한사코 여물어 가고 있다.

― <잠실 유람선 선착장에서> 전문   

류재엽 평론가는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시인 손계숙은 크나큰 서정적 자아를 지니고 있고, 그 바탕에는 사랑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그 사랑의 마음을 시로 형상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의 시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사랑은 자신의 시에 대한 사랑이요, 어머니와 고향, 자아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남성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말해 손계숙은 타고난 사랑의 마음을 지닌 사랑의 시인이다. 그리고 그녀의 시는 사랑의 향기로 가득하다.”

세모시 올처럼
하늘빛이 열리는 아침
패인 세월의
두께를 헤집고
숨쉬고 있는
흑백사진 한 장
 
희로애락의 성상을
등뒤에 감춘 채
인내가 다림질된 행주치마 두르고
준열한 삶을 털어내셨던
어머니
 
항상 침묵의 빛깔로 속내를 삭이며 
바람 한 자락 떨구고 간 사랑내음
앞에 선 당신
컬러사진 속의 딸을 보신다
 
삶의 끝에 이는 바람
추연한 하늘 저 켠 빗살 그으며
내 중심에 서 계신 
어머니

― <어머니> 전문 

손계숙 시인의 시는 한 편 한 편이 가슴을 저미는 느낌으로 와 닿는 특질이 있다. 그 이유는 분명 시인의 가슴 속 내재한 사랑에 대한 진실과 소구(訴求) 의식이 시에서 그대로 끈끈하게 발현되기 때문이리라.    앞서 살펴본 류재엽 평론가의 해설을 보더라도 손계숙 시인이 시를 통해 독자들에게 던져주는 사랑의 메시지가 어느 정도인지 웬만큼 짐작이 되리라.

굳이
가슴을 열지 않아도
당신의 깊어지는 사랑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사구지에 핀 순기비꽃처럼
그리움에 싸맨 가슴
사뭇 멍이 짙어 가도
 
우리
하늘과 바다처럼
하나될 수 없어
가슴뼈를 뚫는 번개가 됩니다
 
이제 황홀한 통증으로 
힘들게 잡고 있던
사랑의 끈 점점 놓으며

시나브로
뒷걸음치는
나 그리고 당신
우리를 봅니다
― <개포공원 연리지> 전문 

시집 『이제야 사랑인 것은』은 제1부 ‘사랑의 의미’,  제2부 ‘따뜻한 사람들’,  제3부 ‘여행’, 제4부 ‘그대가 사랑인 것을’ 등 4부에 걸쳐 <사랑초>, <첫사랑>, <장바구니를 비우며>, <강가의 나룻배>, <겨울안개에서>, <장미주단>, <고향마당 빨랫줄>, <어느 병동에서 빗질하는 도깨비>,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유월에 피는 님>, <청계산 나무 앞에서> 등 모두 67편의 서경 또는 서정성이 높은 시를 담고 있다.

손계숙 시인은 진주교육대학을 졸업하고 15여년을 교단에 봉사한 교육자 출신이다. 《문예운동》지를 통해 등단한 이래 한국문인협회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원, 서울 청하문학회 부회장, 《문학과 현실》지와 《생활문학》지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구일보 '大邱詩評'과 '달구벌 칼럼' 등을 집필하기도 했다. 설송문학상을 비롯해 한국문학비평가협회 문학상, 대한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 『사랑초』, 『맨살의 그리움은 별비되어 흐르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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